[카일의 수다#911] 히로시마성에서 만난 또 하나의 이야기, 호국신사 그리고 Carp

Published on HivePostify by @khaiyoui · Tue Sep 08 2026

히로시마성의 천수각을 둘러본 뒤 성 안쪽을 조금 더 걸어가다 보면 히로시마 호국신사(広島護国神社)를 만날 수 있다. 성을 보고 그냥 돌아가기보다는 함께 들러보면 좋은 곳인데, 지금의 호국신사가 자리하고 있는 곳 역시 히로시마성터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신사’라는 공간은 조금 낯설고, 어쩌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국가신도가 식민지 지배와 황국신민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고, 지금도 야스쿠니신사처럼 전쟁과 군국주의의 역사와 연결된 신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신사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원래 일본의 신사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신토에서 신을 모시고 자연과 조상에게 감사하거나, 가족의 건강과 평안,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는 일상적인 종교 공간이다. 일본 곳곳에 있는 신사마다 모시는 대상과 역사도 제각각이어서 모두 같은 의미로 바라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히로시마 호국신사 역시 이곳이 어떤 신사인지, 그리고 어떤 역사를 지나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곳은 전쟁과 원폭이라는 히로시마의 역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단순히 일본의 전통적인 신사 하나를 둘러본다는 느낌보다는 그 안에 담긴 역사까지 생각하며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히로시마 호국신사는 1868년 메이지 유신 당시 전사한 히로시마번의 무사들을 기리기 위해 처음 세워졌다. 이후 여러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모시는 신사로 이어져 왔으며, 현재는 약 9만 2천여 위패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자리로 오기까지는 조금 특별한 역사가 있다. 원래는 히로시마성 근처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지만, 1934년 옛 히로시마 시민구장 부근으로 이전했다. 그리고 1945년 8월 6일 원폭이 투하되면서 신사의 건물은 모두 소실됐다. 이후 임시로 작은 사당을 마련해 제사를 이어갔고, 전후 히로시마의 복구 과정에서 다시 이전하게 되면서 1956년 지금의 히로시마성터에 새로운 신사를 세우게 됐다.

호국신사를 둘러본 뒤에는 히로시마성 동쪽으로 걸어가 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이곳에는 원폭 당시 살아남은 히로시마 호국신사의 큰 도리이, 이른바 ‘피폭 대도리이(被爆大鳥居)’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원래 신사에 있던 도리이 가운데 하나로, 원폭 투하 당시 폭심지에서 약 150m 떨어진 곳에 있었음에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후 신사가 현재의 히로시마성터로 이전하면서 이 도리이도 함께 옮겨져 지금의 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히로시마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것이 바로 ‘鯉城(りじょう)’, 즉 잉어성이라는 별명이다. 히로시마성 주변에 잉어가 많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잉어가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 용이 된다는 의미를 담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히로시마의 프로야구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이름도 이어진다. 원폭으로 큰 피해를 입은 도시가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1950년에 창단된 팀으로, ‘Carp’는 바로 잉어를 뜻한다.

그래서 히로시마성을 보고 호국신사까지 둘러보는 길은 단순히 관광지를 하나 더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성의 역사와 원폭으로 사라진 옛 모습, 전후 다시 자리 잡은 신사,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히로시마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수각을 본 뒤 잠시 걸으며 호국신사와 피폭 도리이까지 함께 둘러보면 히로시마성의 역사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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